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(문단 편집) === 유년기 === 상술했듯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는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 괴르츠(현 [[이탈리아]] 고리치아)에서 태어났다. 운게른슈테른베르크가는 [[발트 독일인]] 귀족 가문이었고, [[1888년]] 로만 가족은 가문의 본거지인 [[에스토니아]] [[탈린|레발]]로 이주했다. 당시 에스토니아는 [[러시아 제국]] 땅이었고, 운게른슈테른베르크 일가도 자신들을 러시아 제국 신민으로 여겼다. [[1891년]] 부모가 이혼했고 로만은 모친을 따라갔다. 모친은 호이닝겐호이네 남작가의 귀족과 재혼했고 로만은 레발 시내에서 40여 마일 떨어진 숲속의 호이닝겐호이네 저택에서 자라며 [[여름]]에는 발트해 히우마 섬의 별장에서 지냈다. 히우마섬은 200년 넘게 호이닝겐호이네가의 영지였다. 운게른슈테른베르크는 자신의 귀족 혈통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. 로만은 흉악한 불량소년이었다. 다른 [[불량배]]들도 그를 두려워해 건드리지 않았고,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했다. 그는 열두 살 때부터 동물을 [[고문]]하기를 즐겼고, [[사촌]]의 애완[[올빼미]]를 아무 이유없이 [[교살]]하기도 했다. 로만은 [[1900년]]경 [[김나지움]]에 입학했으나 거기서도 비행을 저질렀다. 결국 [[교장]]이 계부와 모친에게 제발 [[학교]]를 그만둬 달라고 사정을 해서 권고자퇴를 한다. 그래서 학교를 때려친 로만은 군에 입대해서 [[러일전쟁]]에 종군하려 했다. 하지만 그를 태운 수송열차가 [[극동]]에 도착하기도 전에 [[전쟁]]이 끝나서 제대로 종군하지는 않았다. [[1905년]] [[에스토니아]]의 농민들도 독일계 귀족 상전들에게 민란을 일으켰다. 가혹한 통치로 원한이 많이 쌓였던 농민들은 귀족들을 [[린치]]하고 그들의 대저택에 불을 질렀다. 운게른슈테른베르크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호이닝겐호이네 저택도 잿더미가 되었다. 이것은 운게른슈테른베르크에게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. 그는 어째서 감히 무지렁이 농민들이 이 따위 짓을 할 수 있는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고, 평민들이란 그저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증오에 사로잡힌 존재들이라 상종할 수 없다는 [[선민사상]]에 지배된 사고방식을 굳혔다. 그리고 이 가치관은 평생 그를 지배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